나는 아르헨티나를 처음으로 야간 비행 하던 그날의 장면을, 별만 홀로 반짝이고 드문드문 초원에 불빛이 보이던 캄캄한 밤을 언제든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불빛 하나하나가 어둠의 대양 가운데 의식이라는 기적이 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 우리는 서로에게 가 닿으려고 애써야 한다. 들판 여기저기 타오르는 불빛 가운데 몇몇과 교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_‘서문’ 8쪽
나는 사람들이 나직이 주고받는 속내를 듣고 놀랐다. 그들의 이야기란 질병, 돈, 가정의 슬픈 고민거리들이었다. 그것들은 감옥의 빛바랜 벽들을 칠했고 이들은 그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운명의 얼굴이 내게 보였다. 여기 있는 나이 든 공무원, 나의 동료여, 당신은 일말의 책임도 없다. 어떤 것도 당신의 탈출을 돕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흰개미들이 하듯 모든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콘크리트로 메워버리고 평화를 축조했다. 당신은 소시민의 안전함, 루틴들, 시골생활의 숨 막힐 듯한 의식 안에 공처럼 몸을 웅크린 채, 바람과 진흙과 별들에 맞서 이 소박한 성벽을 올렸을 것이다. 당신은 거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미 인간의 조건조차 잊을 정도로 허다한 어려움을 겪었기에. 당신은 방랑자 별의 주민이 아니며, 대답 없는 질문들을 묻지 않는다. 당신은 툴루즈의 소시민인 것이다. _‘항로’ 26쪽
기요메의 위대함은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 우편물에 대해, 희망을 품은 동료들에 대해 그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그들의 고통이나 기쁨을 손에 쥐고 가늠해 본 것이다. 살아 있는 이들 안에, 새로이 세워질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서 거기 일조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라는 차원에서 사람의 운명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 인간이 된다는 것은, 명확히 말하자면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세계의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동료들이 이룬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돌을 하나 놓음으로써 세계를 건축하는 데 공헌함을 느끼는 것이다. _‘동료들’ 61쪽
다시 한 번 우리는 조난당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조난자라면 응당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침묵에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실수로 이미 갈기갈기 찢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안데스에서 귀환한 기요메도 그가 조난자들을 향해 달려갔노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보편적 진리인 것이다. “만일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면 나는 쓰러지고 말았을 거야.” _‘사막 한복판에서’ 196쪽
미지의 조건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걸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인가? 인간의 진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진실은 결코 증명되는 게 아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토양에서 오렌지나무가 굳건히 뿌리내리고 과실을 맺는다면, 그 토양이 오렌지나무의 진실이다. 만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한 종교, 문화, 가치들과 활동 형태가 한 인간을 풍요롭게 하고, 그의 내면에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위대한 영주를 해방시킨다면, 그것이 인간의 진실이다. 그렇다면 논리는? 그것은 삶을 해명하기 위해 얽힌 것을 풀어가는 작업인 것이다! […] 당신이 무엇보다도 찬양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토대를 둔 대지다. _‘인간들’ 221쪽
외부의 공동의 목표 안에서 형제들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쉰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같은 대열 안에서 하나로 묶이고 동일한 고지를 향할 때 동료가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처럼 모든 것이 안락한 시대에, 무슨 이유로 사막에서 마지막 식량을 나누면서도 우리가 그토록 충만한 기쁨을 느꼈겠는가? 사회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하라 사막에서 구조작업을 하며 크나큰 기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른 즐거움은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_‘인간들’ 234쪽
나는 아르헨티나를 처음으로 야간 비행 하던 그날의 장면을, 별만 홀로 반짝이고 드문드문 초원에 불빛이 보이던 캄캄한 밤을 언제든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불빛 하나하나가 어둠의 대양 가운데 의식이라는 기적이 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 우리는 서로에게 가 닿으려고 애써야 한다. 들판 여기저기 타오르는 불빛 가운데 몇몇과 교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_‘서문’ 8쪽
나는 사람들이 나직이 주고받는 속내를 듣고 놀랐다. 그들의 이야기란 질병, 돈, 가정의 슬픈 고민거리들이었다. 그것들은 감옥의 빛바랜 벽들을 칠했고 이들은 그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운명의 얼굴이 내게 보였다. 여기 있는 나이 든 공무원, 나의 동료여, 당신은 일말의 책임도 없다. 어떤 것도 당신의 탈출을 돕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흰개미들이 하듯 모든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콘크리트로 메워버리고 평화를 축조했다. 당신은 소시민의 안전함, 루틴들, 시골생활의 숨 막힐 듯한 의식 안에 공처럼 몸을 웅크린 채, 바람과 진흙과 별들에 맞서 이 소박한 성벽을 올렸을 것이다. 당신은 거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미 인간의 조건조차 잊을 정도로 허다한 어려움을 겪었기에. 당신은 방랑자 별의 주민이 아니며, 대답 없는 질문들을 묻지 않는다. 당신은 툴루즈의 소시민인 것이다. _‘항로’ 26쪽
기요메의 위대함은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 우편물에 대해, 희망을 품은 동료들에 대해 그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그들의 고통이나 기쁨을 손에 쥐고 가늠해 본 것이다. 살아 있는 이들 안에, 새로이 세워질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서 거기 일조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라는 차원에서 사람의 운명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 인간이 된다는 것은, 명확히 말하자면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세계의 비참함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동료들이 이룬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돌을 하나 놓음으로써 세계를 건축하는 데 공헌함을 느끼는 것이다. _‘동료들’ 61쪽
다시 한 번 우리는 조난당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조난자라면 응당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침묵에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실수로 이미 갈기갈기 찢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안데스에서 귀환한 기요메도 그가 조난자들을 향해 달려갔노라고 말했었다! 그것은 보편적 진리인 것이다. “만일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면 나는 쓰러지고 말았을 거야.” _‘사막 한복판에서’ 196쪽
미지의 조건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걸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인가? 인간의 진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진실은 결코 증명되는 게 아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 토양에서 오렌지나무가 굳건히 뿌리내리고 과실을 맺는다면, 그 토양이 오렌지나무의 진실이다. 만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한 종교, 문화, 가치들과 활동 형태가 한 인간을 풍요롭게 하고, 그의 내면에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위대한 영주를 해방시킨다면, 그것이 인간의 진실이다. 그렇다면 논리는? 그것은 삶을 해명하기 위해 얽힌 것을 풀어가는 작업인 것이다! […] 당신이 무엇보다도 찬양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토대를 둔 대지다. _‘인간들’ 221쪽
외부의 공동의 목표 안에서 형제들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쉰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같은 대열 안에서 하나로 묶이고 동일한 고지를 향할 때 동료가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처럼 모든 것이 안락한 시대에, 무슨 이유로 사막에서 마지막 식량을 나누면서도 우리가 그토록 충만한 기쁨을 느꼈겠는가? 사회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진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하라 사막에서 구조작업을 하며 크나큰 기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른 즐거움은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_‘인간들’ 234쪽
